이하랑·하은 남매가 엄마 윤현숙(왼쪽)씨와 서울 도봉동 무수골주말농장에서 땅을 고른 후 씨앗을 뿌리고 있다.도심에서 텃밭 가꾸기가 인기다. 주5일수업제 시행으로 학생들의 체험학습활동이 늘면서 집에서 가까운 주말농장이나 베란다를 활용해 미니 농사를 지으려는 가정이 늘었다. 2~3월 토지 분양을 마친 주말농장들도 이달 초 개장을 하고 씨뿌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텃밭 가꾸기로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싹이 돋아나 열매를 맺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생태체험과 자연탐구를 할 수 있다. 학부모는 이를 인성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농사 짓기 시작한 후 자연에 민감해져
텃밭 농사를 지은 지 올해로 3년 차인 이하랑(서울 오봉초 5)군은 농사꾼이 다 됐다. 토마토가 비에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뿌리 주위에 굵은 소금을 뿌려 물이 잘 빠지게 조치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마를까 걱정부터 한다. “올해는 새로운 작물을 시도하기보다 2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튼튼하게 키워 보려고요.”
이군이 엄마 윤현숙(43·서울 도봉구)씨와 동생 하은(오봉초 5)양과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제주도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늘 자연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윤씨는 “제주도에 살 때는 해초도 따고 고사리도 캤는데 서울로 오니 자연 속에서 즐겼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집 근처 주말농장.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라 주말이 아니어도 일주일에 2~3번은 이곳을 찾는다. 이군은 물 길어 나르는 게 농사에서 제일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비가 오지 않으면 알아서 작물에 물을 주러 혼자 농장에 들른다.
가족은 지난해 오이·방울토마토·딸기·배추 등 여러 가지를 키워 수확까지 했다. 한 해 먹는 채소나 과일은 대부분 이 밭에서 해결한다. 지난해 수확한 무와 배추로 담근 김치는 지금도 먹고 있다. 여름 내내 열무김치를 사지 않았다고 한다. 남매는 밭에서 직접 딴 상추와 쑥갓 같은 모듬 채소로 만든 비빔밥을 제일 좋아한다. 약 13㎥(4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수확량이 많아 한 가족이 먹고 남는다. 방울토마토나 감자, 쌈채소 등은 특히 수확량이 많다. 농사가 잘 됐을 때는 근처에 사는 어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시골 맛이 난다며 특히 좋아한다. 윤씨는 “아이들에게 나눔에 대한 생각과 실천, 자연과 사회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텃밭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도심에 사는 아이들이 씨앗이 자라고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나는 것을 어떻게 직접 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군은 밭에서 발견한 배추벌레나 무당벌레를 유리병에 담아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자연에 민감해졌다.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올 때, 추울 때, 바람이 세게 불 때 농작물 걱정이 먼저 돼서다. 작년에는 옮겨심기를 잘못해 가지 농사를 망쳤다. 고추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실패했다. 김군은 “해가 들어오고 나가는 방향과 키 높이에 따라 작물의 자리를 배치 해야 농사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텃밭 농사를 통해 실패하면서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평일에도 잠시 들를 수 있는 거리가 적당
주말농장은 집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아빠학교 권오진 교장은 “처음에는 들뜬 마음에 기분좋게 참가하지만 한 두 번 가보면 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고 지적했다. 1시간 이상이 걸리면 시간을 내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일에도 잠시 들를 수 있는 거리가 적당하다. 농장은 퇴비와 비료를 미리 섞어 갈아엎어 놓은 곳이 수월하다. 봄에 땅이 얼어 깊이 파기 어려워서다. 무수골주말농장 이남경 대표는 “주말농장이 처음이라면 약 13㎡(4평)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4평 1년 임대료는 10만~12만원선이다. 이 정도 규모면 작물마다 수확 시기가 달라 1년에 10여 가지 작물을 기를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쌈채소나 방울토마토 등을 기르면 좋다.
베란다 텃밭은 공간이 좁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작물의 종류를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 일반 밭에 비해 일조량이 적어 상추·쑥갓·시금치 등 입이 큰 채소들이나 제철채소가 적합하다. 채소 소믈리에 박희란씨는 “초보자라면 감자·콩류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키우기 쉽고 토마토·가지 등의 채소류는 손이 많이 가지만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금방 자라는 작물을 심어 수확의 기쁨을 알고 나면 농사를 짓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고 조언했다. 텃밭의 한 귀퉁이를 아이들에게 맡겨보는 것도 좋다. 책임감과 성취감,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도시 아이들이 소홀하기 쉬운 자연에 대한 생각도 키울 수 있다.
<박정현 기자 lena@joongang.co.kr/사진=김경록 기자>
